배달사업 썰

배달사업 썰 #30 배달음식 다 먹고 오리발 내미는 손님

살랑살랑 배달합니다 2022. 1. 10. 00:54

인 줄 알았으나, 완벽하게 오배송 한 이야기다.

 

 

오늘은 좀 갑갑한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미리 창원 가로수골목 시원하게 구경하시고

시작하겠습니다.

 

 

 

최근에 특정 배달구역에

분실사고가 잦다는 얘기를 들었고,

상점으로부터 그 구역에 배달할 때는

되도록 사진을 좀 남겨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다른 사람 배달음식을 가져가는게

정상인으로서 할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 꽤 많은듯했다.

 

그래서, 나는 이 구역에 올때 

느낌이 쎄 하면 사진을 찍어둔다. 

그래서 오늘 사진을 찍어뒀지 훗

 

사진만 찍어두면 괜찮을 줄 알고 

사진에 호수가 안 나오는걸 알면서도

부랴부랴 엘베 타고 내려갔다.

 

근데 한시간 쯤 후에 전화가 와서는..

"배달완료 메시지가 왔는데 배달이 안 왔는데요?"

라고 하네??!!

 

 

보통 배달기사가 배달완료를 누르면

그 즉시 배달완료 메시지가 폰에 뜰텐데,

한시간이나 지나서 그걸 확인하고 

지금에서야 항의전화를 한다는건....

 

이거슨 말로만 듣던 오리발

이 아닌가?!

싶었다.

 

오리부리는노랗지

노란것은무지

무지발은오리발

 

 

 

이놈 거짓말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뭐 .. 퉁명스럽게 대응했다.

 

"그래서 어떡할까요, 제가 보상해드릴 수도 있고,

 다시 해 갈 수도 있고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저희는

 음식이 배달이 안 된것 때문에 전화드린건데.

 배달을 잘못하셨으면 배달을 제대로 해주셔야죳!"

 

 

아차 싶었다. 

그래서 바로 사과했다. 

배달이 문제라면 내가 잘못한거 맞으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찍어둔 사진이 있는데

그거 한번 봐 주시겠어요?"

 

사실 전송할때까지만 해도

화도 나고 당황스럽고 여러 감정이 들었는데,

내가 오늘 반성하는건 이 부분이다.

내가 배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배달 좀 실수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만큼

직업의식이 옅어져 있었다는거,

그리고 내 잘못인 게 확실함에 가깝도록

내 주장을 고집하고 있었다는 거.

 

 

고객은 사진은 자기층이 아니라고 했고,

자기층의 특징을 설명해줬는데

이제는 고객이 구라치는 거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고객은 식당과 통화를 했고

내가 음식만 다시 갖다주면 

환불이나 재주문은 안하겠다고 했다. 

 

 

 

내 잘못인 게 백퍼센트인 이상

가서 고객에게 사과를 해야 했고,

나는 바나나우유 3개를 사서 2개를 주면서 사과했다.

(1개는 내가 먹었다. 그 와중에 나도 먹고싶더라)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다시 음식을 찾아볼건데

 어디에 뒀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서

 각 층마다 40호에 가 봐야할 것 같아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갖다드릴게요."

 

그리고 1440호에서 계단으로 내려가

1340호 두드려서 회 못봤냐고 물어봤다가 

누굴 도둑놈으로 보냐고 욕먹고

1240호 두드리다가 반응없어서 

이사람이 먹고 잠수탄거 아닌가 고민하다가

1140호 내려갔는데.. 있었다.

 

1140호 사시는 분 복받으세요

1240호 사시는분 미안합니다

1340호분도 미안합니다..

 

1440에 갖다줄 걸 1140에 갖다준거였다.

다시 갖다드리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제가 통화할 때, 보상해드리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어야 하는데 그게 퉁명스럽게 말해버려서

 고객님 기분을 상하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만원은 그 기다리신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하고자 제가 드리는거니 받아주세요."

 

고객'님'도 날카로웠던 자기 반응을 사과하면서

만원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오늘의 반성

1. 직업의식이 옅어져 있다

2. 이미 내뱉은 말을 번복하는 건 어렵다.

 

오늘은 다행히 바로 사과했지만

내가 잘못한 일인데도 사과하기가 

감정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다른사람과 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오늘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다음에는 어떤 고집을 피울지 모른다.

항상 내가 잘못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잘못을 정직하게 사과하는 사람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