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튜토리얼

초보사업가 튜토리얼 #3 산다는 것의 의미

살랑살랑 배달합니다 2021. 8. 23. 18:29

https://youtu.be/mrZhHz44kwE?t=408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것이

철 드는 때가 아니겠나 싶다.
지금도 나는 그 생각을 하고 있고, 

이 생각을 심각하게 많이 한 사람은 성공하고 행복할 것이고, 

그게 아니면 평범한,

혹은 심하게 말하면 동물이나 마찬가지의 삶일 것이다.

 

오늘 첫째는, 나를 위해 살아보니 이런 점은 달라져야겠더라,

우리 시대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 싶은 것을 먼저 말씀드린다.

불가에서는 인생을 생로병사의 과정이라 하는데, 

생사는 인생외의 것이니, 늙고 병드는 것만이 남는다. 

병은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늙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건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젊어서도 늙게 사는사람이 있고, 

늙어서도 젊게 사는 사람이 있는데, 내 과거를 생각해본다.

30대중반에 연대에 교수로 갔는데, 

선배 교수들이 정년되는건 남의 일로 생각했다.
내가 회갑쯤 되니까 나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자꾸 건강이 어떠냐고 묻더라. 

다른 사람 말을 들으면 나도 늙겠다 싶더라. 

65세가 돼서 정년퇴임 송별회도 해 주는데,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부터 더 잘 할 것 같더라. 
폴 길리라는 하버드 독일교수가 생각났다. 

독일서 태어나서 신학대학에서 65세에 교수를 끝내고, 

만 72세까지 하버드에서 교수했는데, 그 종강식에 갔었다. 

그때 하는 말이, 끝낼 줄 알았는데 시카고 대학에서 5년 계약했다더라. 

그런 분은 80될 때까지 강의하는데, 나만 65세에 끝낼 순 없지 않냐. 

그래서 나 송별회 때도 그렇게 말하고 보람있게 살아왔다. 
이제 보니까 제일 보람있게 산 게 70~78 근처더라. 

80까지는 늙었다는 생각 없이 일해왔다.
80 넘으니까 내 친구 둘이랑 셋이 만나서 얘기해보다가 

언제쯤 인생에 철이 들었는고 얘기해봤는데, 

50쯤은 아직 어리고 60쯤 되니 철이 드는 것 같더라. 

그때부터 15년간 75세까지는 성장하더라. 

그러니까 60~75세 까지가 제일 좋더라. 

내가 75,6세쯤 됐을 때 92,3세 쯤 된 스승을 모시고 어딜 갔는데, 

그분이, “김 선생 올해 연세가 얼마가 됐더라?” 하시더라. 

“올해 76입니다” 했더니 아무 말 없이 한참 계시다가 

“좋은나이올시다” 이러시더라. 

그때 보니 내가 그 나이까지 살면 75,6이 아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90이 되니까 이상하게 두 친구도 세상 떠나고, 

친구들이 다 없어지더라. 90이 참 살기 힘든가보다 했다. 

가만 보니, 정신과 신체의 균형이 깨지는 것 같다. 

그걸 보다보니 그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 

95세쯤 되니까 신체와 정신의 균형이 깨져가더라. 

정신력은 안 늙는데, 신체가 늙더라. 

98세쯤 되니까 정신력이 신체를 끌고 가야되더라. 

한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 열명을 뽑았다는데 

나도 거기 있더라.

내가 못 꼈을텐데, 그러면서 보니까 나머지 사람들이 보니까 50,60대야.

나는 문장력이 좀 떨어져도 사상에서 좀 낫나보더라.

50대쯤 되면서부터는 기억력이 떨어지니까 정신력이 쇠퇴하는가 싶은데,

기억력이 떨어지니까 그때부터 사고력이 올라간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건, 기억이 아니라 사고력이다.

사고력은 노력하면 신체가 끝날 때 까지 올라간다.

깜박깜박 하는거 심리학자들한테 들어보면

고유명사, 보통명사, 형용사, 부사, 이런것들이 사라지는데, 동사는 죽을때까지 안 없어진대. 

100세가 되면서 조선,동아에서 칼럼을 쓰게 됐는데, 

써 보니까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게 되더라. 

좋게 말하면 선의의 경쟁아니겠나. 

여러분은 95세까지는 살지 않겠나 싶다. 

살아보니까 30,60,90이 단계더라. 

90까지는 늙지말고 책임을 맡아라. 

세 단계 중에 가장 중요한 건 열매맺는 때 아니겠나. 

인생의 세 단계 가운데 열매 맺는건 60대 후반부터인 것 같다. 

60대 후반이 있으니까 내 인생이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 생각인 줄 알았는데, 50여년쯤 일본에 가 봤을 때 그러더라. 

60대가 되니까 자녀도 떠나고 직장에서도 떠나게 되더라. 

60대 이후에는 사회에서 다시 태어나서 인생을 다시 만들어보자 그래. 

어떻게 하냐면, 

첫째, 공부를 새로 시작하자. 독서가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절대 놀지 말라는 거야. 놀면 내 인생을 잃어버리는거다. 

세 번째는 과거에 하지 못했던 취미활동을 시작해라. 요새 우리 주변도 이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독서는 많이 권하고 싶고, 나이든 사람들이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 보면 세계 인류에서 문화적 혜택을 받고 있는 나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이 다섯 나라의 문화를 갖고 우리가 살아간다. 

이들은 국민의 절대다수가 100년이상 독서한 나라다. 

우리가 요즘 걱정하면서도 말은 안 하는건, 문자다. 

이제부터 한 100년 쯤 지난 후에 한글문화가 인정을 받냐 못 받냐 하는거다. 

중국은 전통이 있고 나라가 크니 문자가 남을거고, 일본은 남을 건데, 

한글 문화가 국제적으로 가게 되면 남을거고, 

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하면 없어질거다. 

한글문화를 살리려면 인문학과 독서가 살아야 한다. 

러시아가 공산국가가 되면서 인문학이 없어졌고, 

중국은 내륙으로 갈수록 인문학이 없어진다. 

그러니 한국은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나이 든 사람들은 한글로 독서하는 것이 애국심 중의 애국심이라고 본다. 

이렇게 보면 처음 말하고 싶었던 게 뭔고 하니,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데, 

내 인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취미활동을 하는 것은 소홀히해선 안 되겠다 하는거다. 

이제부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선택해주는 것이 우리의 첫째 길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일하기 위해 태어나고 사는거니까, 일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한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제일 가난하게 살았던 적은 연대에서 3~4년간은 경제적 고통이 심했다. 

아들딸 가리지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 했던 때 여섯을 키웠고, 

6.25전쟁 나니 북에 있던 어머니가 동생 셋을 데려오니 부양가족이 열명 쯤 됐다. 

몇해 간은 말 못할 가난에 살았다. 

가난은 경제기초생활이 안 되는게 가난이다. 

그때는 돈 때문에 일했다. 수입이 있어야 살 수 있으니까. 

다른 대학에 시간강사도 나가고 하니까 조금 안정이 됐었다. 


한 번은 월요일쯤 이었는데, 대구에서 제자가 찾아와서 

중고등학교 선생 600여명을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부탁하더라. 

같은 시간에 삼성그룹에 강연선약이 있어서 못 할 것 같다 했는데, 

제자의 실망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더라. 

그래서 기다려보라 하고 삼성그룹에 양해를 구했다. 

삼성에는 강사료도 많고 고생도 안 하는데, 대구가면 힘들고 돈도 안 될 거라 생각했다.
근데 한편으로는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이렇게 얘기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싶더라. 

삼성에 양해를 구하고 대구를 다녀왔다. 

그러고는 내가 서울 도착하고는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까지는 가난했으니 용서를 받을 수 있었어도, 

이제 기초생활은 되니까 

무슨일이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돈, 수입만을 위해 살면 내 인생이 돈의 노예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걸 계기로 생각을 바꾸고는 두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는, 돈과 수입을 위해 일할때는 

피곤하고 힘들고 마지못해 일하고 행복하질 못했는데,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아서 하니까 피곤을 모르겠더라. 

더 많은 일을 해도 행복하고 즐겁더라. 

필요없는 걸 떼 버리니까 훨훨 가게 되더라. 
 

둘째는, 돈과 수입을 위해 일하는 건 수입이 끝나면 일이 끝난다. 

근데 일에서 일을 찾아서 하니까 일이 일을 만들고 그러더라. 

책을 좀 많이 썼는데, 내용이 좋으면 독자를 계속 부르고 

책을 계속 쓰게 되더라. 

돈을 사랑할 때보다는 일을 사랑하니까 

수입도 더 많아지더라. 

일을 사랑해야지, 돈을 사랑하면 안 된다.

52시간이 요즘 어쩌구 하는데,

일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노동운동을 하면 안 된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노동운동을 해야 나라가 복을 받지,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노동운동을 하게 되면 가난해진다.

우리는 박정희때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

그 때는 일을 정말로 사랑했다.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때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1981년에,

국민의 의식구조를 조사했는데,

“먹을것이 충분하고 생활이 안정돼도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86%가 한다고 했다.

나는 그 통계 보고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그 경제가 지금을 이룬 거다. 

80이 가까워져서 또 생각해본 건, 

그때까지는 나는 100사람이 100가지 일을 하면 

일의 목적이 100가지 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100사람이 100가지 일을 하는 것 같아도, 일의 목적은 같다. 

그걸 깨달으니까 내 인생이 한 단계 올라가더라. 

정치가는 왜 정치하냐? 

국민들이 인간답게 살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기업은 왜 하냐? 

기업을 통해 빈자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고 인간답게 살고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교육은 왜 하는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통해 좋은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왜 하는가? 

내가 하는 일로인해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그게 성공하는거다. 

이기주의자는 절대 성공할 수 없고, 절대 안된다. 

더불어 살면서 행복을 나눠야 하고, 보람있는 일은 그런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경제관이 좀 달라지더라. 

그 전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일했는데, 

이제는 내가 돈을 내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위해 쓰게 되더라.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내 비용을 지불하게 되더라. 

그렇게 사니까, 일의 보람을 느낀다. 

그 사람들이 다 하는 말이, “우릴 위해 수고해 줬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교육이란 교육자가 씨를 뿌리고 사회가 열매를 거두는 거다. 

제자들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걸 보니 너무 기분이 좋다. 

이제 나는 내 모든 정성을 바쳐서,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고 보람있게 살 거다. 

 

소유를 위한 단계, 

일을 사랑하는 단계, 

일의 가치를 사회에 전하는 단계,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고 변화의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결론 비슷하게 말씀드린다. 
우리가 정치든 경제든 얘기할 때 결론은 

‘공동체의식을 올바로 가지는 것’이다.

 작은 공동체건 큰 공동체건. 

연대 교수할 때 봉급 오르니까 그렇게 좋았는데, 

몇 해 지나니까 가난해서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들을 볼 때 부끄럽더라. 

그게 공동체의식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공동체의식이다. 

그 공동체 단위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3.1운동 전에는 공동체의식이 나만의 가정에 있었다. 

3.1운동때에는 나와 내 민족, 내 국가로 바뀌었다. 

그게 연장돼서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이어왔다. 

가정이나 가족보다 국가와 민족,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품어라. 

내 친구 한명이 캐나다 이민가서 얘기한 게 있다. 

이민와서 쭉 살아보니, 캐나다가 전쟁나면 

내가 20대라면 자원입대 하겠다고, 

이 나라가 나를 이렇게 지원해주는데 내가 안 지키면 어떡하냐고. 

근데 그 분이 교회 장로인데, 

한국에서 교회헌금은 내는데 세금은 안 내려 했었다고 그러더라. 

캐나다 살아보니까 교회헌금보다는 세금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더라. 

교회헌금은 좁은 위치에서 쓰이지만, 

세금은 넓게 쓰이지 않냐고. 

여기에 깔려 있는게 공동체의식이다. 

우리는 그걸 상실하고 있다. 

선친께 고맙게 느끼는 게 있는데, 

시골에서 내가 처음 중학생이 돼서, 중학교에 합격했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얼마 후에 말씀하시더라. 

너가 이제부터 긴 인생을 살아갈텐데, 

가정 걱정만 하면 가정만큼만 큰다. 

친구들과 좋은 직장을 만들고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 봉사하게 되면, 

그 사회만큼 커진다.

하지만 똑같은 사람이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면서 살게 되면,

너도 모르게 민족국가만큼 성장하게 된다.

이게 바로 기독교정신이다. 공동체의식이고.

내가 쭉 살아보니 아버님의 말씀이 진리였다.

내가 연대 처음 가서 쭉 보니 많은 교수들이

대학과 학문을 위해 살 것인가 보다는

대학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고자 했다.

그런 사람은 65세가 되어 정년이 되면, 대학에서 버림받는다.

하지만 나 자신보다 대학, 학문을 위해 일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면 세상이 그들을 필요로 한다.

나라를 위한 마음을 가져라.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나라가 행복하고,

그렇지 못한 자가 리더가 되면 나라는 분열되고 이기주의자들이 판을 치게 된다. 

애국심을 가져라. 

우리 역사를 나는 세 단계로 보는데,

이승만부터 전두환까지는 강자지배였고,

김영삼까지는 법치였다.

여기서 도덕과 윤리적가치를 찾게 되면 질서사회로 올라가서 선진국이 된다.

양심과 공동체의식이 바탕이 된 사회다.

근데 권력을 다시 쓰면 강자지배로 돌아간다.

우리는 질서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책임을 맡아야 한다.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법치주의사회의 가장 큰 공식은 “정의”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법치의 공식이다.

좌파정치가들은 평등사회를 위해 정의를 수단으로 쓴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자꾸 통제를 하는 거다.

통제를 해야 평등사회가 된다고 보는거다.

내가 전문가도 아닌데 말해서 미안하다만,

집값이 왜 해결이 안되냐면, 통제만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 맡기면 된다. 간섭하고 간섭하면 점점 나빠진다.

정치권력이 간섭하면 후퇴한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도덕과 윤리적가치로 올라갈수가 없다.

선의의 경쟁과 인간애가 있는 자유민주주의국가만이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민주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인간애다.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함께 일하자는거다. 

나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함께 일했던 친구가 있었다. 여러분도 그런 생각을 함께 가져 주신다면 하는 말씀을 드린다. 

 

 

 

김형석 선생님의 강연을 옮겨 적었다.

영상에서 선생님은 존대를 하시는데 

편의상 반말로 기록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이 글의 카테고리를 뭘로 설정할까, 생각해봤는데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업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